자연의 세계/국외

황금 사원

조전 2009. 1. 30. 16:13

 

황금 사원 (Golden Temple)

인도 북부 펀잡 주 암릿사르

400kg에 달하는 순금으로 덮여있는 황금사원!

암릿사르 골든 템플 Amritsar Golden Temple
 
암릿사르는 시크교의 총 본산이다


인도 북부 푼잡 주 최대의 도시로 파키스탄 국경에서 50㎞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암릿사르는

1577년 시크교의 제4대 구루였던 람 다스가 암릿타사라스(AmritaSaras)라는
신성한 저수지 주변에 건설한 도시로,
암릿사르라는 지명은 이 저수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황금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 해야 할것이 있다.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두건을 쓰야하며, 맨발로 들어가는 것,

남.여노소 인종 차별 없이 모두에게 적용된다.
만약 두건이나 모자가 없다면, 입구에서 두건을 나눠준다.
신발은 무료로 보관해주는 곳이 입구 옆에 있고,
4개의 입구에는 발을 씻는 곳이 있다.


이런 암릿사르 황금 사원도 한편으론 피의 역사다.

푼잡 주의 힘든 역사는 1919년경,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위해 고심하던 인도 정치가들의 집회장에
영국인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400여 명이 몰살 당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인도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지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피의 역사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 곳에 

비극을 거쳐 오면서도 아름다움을 굿꿋하게 보여주는 것이니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황금 사원이다. 


종교적 문제로 나라는 푼잡 지역을 경계로 하여

힌두국가 인도와 회교국가 파키스탄으로 나누어지며,
라호르(Lahore)는 파키스탄의 중심지가 되고 암릿사르는 푼잡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민족 대이동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의 힌두교도들은 인도로 이동하고,

인도의 회교도들은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느라 대혼란이 일어나는데,
이 대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략 100만여 명에 달한다니 그 혼란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나라까지 갈리는 상황에 상호 충돌이 없었을 리 없다.
이 민족 대이동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이동자의
4분의 1이 넘는 25만 명 이상이다.


그러나 이 대이동으로도 피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는 시크교 강경파들이 주의 독립을 주장하며 황금사원을
장악하고 강경투쟁에 나섰다.
당시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Indira Ghandhi)는 탱크까지 동원하는 초강력 대응에 나섰고,

그 결과 1984년 그녀의 시크교 보디가드에 의해 암살 당하고 만다.


암릿사르의 시크교(Sikh)도 모습은

짙은 수염에 커다란 터번을 두른 큰 남자들의 모습이 맨먼저 들어온다.
회교와 힌두교의 장점을 결합한 시크교는 푼잡을 본거지로 한,
암릿사르는 파키스탄과 매우 가깝다는 이유로,
주도는 이 곳이 아닌 찬디가르(Chandigarh)로 정해졌지만,
사실 실질적인 푼잡의 중심은 암릿사르이다.


시크교의 네 번째 구루(Guru, 영적스승) 람 다스(Ram Das)에 의해 조성된 도시 암릿사르의 중심은

역시 황금사원(Golden Temple)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사원도 아름다운데,
그를 능가하는 400kg에 달하는 순금 지붕 덕에 더욱 유명한 곳이다.


시크교는 나눔의 종교이다.
사원 안에서는 예배 때 올렸던 단 과자를 비롯해 간식이며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마하라자 란지트 싱의 치세(1801~39) 때 대리석과 구리에 금박을 입혀 재건축 되었다.
암릿사르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인도 파키스탄 국경지방에서

매일 해지기 바로 전에 열리는 그곳의 closing ceremony 이다.


장엄하면서 웅장하기 까지한 이 장면은 이 곳에 온다면 놓치기 아까운 명장면 이다. 


   낮에는 골? 纓徘쳄?보고 해지기 바로전에 버스나 릭샤로 이동후
closing ceremony의 멋진 장면을 감상하는 것도 암리차르에서 빼놓을수 없는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