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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서 군적(軍籍)을 올렸다. 이보다 먼저 남은(南誾)·박위(朴葳)·진을서(陳乙瑞) 등 8명의 절제사(節制使)를 보내어 왜구(倭寇)를 방비하게 하였는데, 왜구가 물러가매, 남은은 경상도에서, 박위는 양광도 에서, 진을서는 전라도에서 군사를 점고(點考)하여 명부(名簿)를 만들게 하고, 그 나머지 여러 도(道)에는 안렴사로 하여금 군사를 점고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군적(軍籍)을 만들어 올리게 되니, 경기 좌우도와 양광도 ·경상도·전라도·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강릉도(江陵道) 등 8도에 마병(馬兵)·보병(步兵)과 기선군(騎船軍)이 합계 20만 8백여 명이고, 자제들과 향리(鄕吏)·역리(驛吏)와 여러 유역자(有役者)가 10만 5백여 명이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44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인사-임면(任免) / *외교-왜(倭) / *재정(財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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