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위 기록분

왕씨의 모반 사건에 대한 왕화, 김유의의 공초

조전 2011. 9. 11. 11:43

太祖 5卷, 3年(1394 甲戌 / 명 홍무(洪武) 27年) 3月 1日(庚子) 4번째기사
왕씨의 모반 사건에 대한 왕화, 김유의의 공초


李居易朴信田時等復鞫王和金由義等。 曰: “去壬申年十一月, 定陽君送人于益川君曰: ‘勿以入島爲憂。 吾謀欲復立。’” 由義曰: “去壬申年九月, 見朴葳峰城田舍。 問曰: ‘興茂以吾命爲何如?’ 對曰: ‘厄運。’ 且問以杆城君原子及定陽君之命爲何如, 對曰: ‘皆運衰。’ 又謂予曰: ‘更卜右件人等命運以來。’ 予於是年十一月, 還歸密城, 以之意告于仲質, 更卜於興茂。 卜之亦曰: ‘運衰。’”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59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변란(變亂) / *역사-전사(前史)

태조 5권,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3월 1일(경자) 4번째기사
왕씨의 모반 사건에 대한 왕화, 김유의의 공초


이거이(李居易)·박신(朴信)·전시(田時) 등이 다시 왕화(王和)·김유의(金由義) 등을 국문(鞫問)하니, 왕화가 말하였다.
“지난 임신년 11월에 정양군(定陽君)익천군(益川君)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섬에 들어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다시 왕으로 세우고자 꾀합니다.’ 하였습니다.”
김유의가 말하였다.
“지난 임신년 9월에 박위봉성(峰城)의 전사(田舍)에서 만났는데, 박위가 묻기를, ‘이흥무(李興茂)가 나의 명운(命運)을 어떻다 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액운(厄運)이라.’ 하고, 또 묻기를, ‘간성군(杆城君) 원자(元子)와 정양군(定陽君)의 명운(命運)을 어떻다 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모두 명운이 쇠진하다.’ 했으며, 박위가 또 나에게 이르기를, ‘다시 위에 말한 사람들의 명운을 점쳐서 오라.’ 하므로, 내가 이해 11월에 밀성(密城)으로 돌아와서 박위의 의사로써 박중질(朴仲質)에게 알려, 다시 이흥무에게 점치게 했더니, 이를 점치고 나서 또한 말하기를, ‘명운(命運)이 쇠진하다.’고 하였습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59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변란(變亂) / *역사-전사(前史)